면허가 없던 이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대학교 1학년 때 바로 면허를 따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지만 나는 그때 면허를 따지 않았다. 당장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재학 중인 KAIST는 신청만 하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어 통학을 걱정할 상황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차를 타고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면허를 따놓고 운전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중에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따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면허 취득을 계속해서 미뤄왔었다.
면허의 필요성
24년 1월부터 26년 5월까지 시프트업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취방은 회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였다. 도보 15분이라는 편의를 위해 월세 120을 투자한 셈인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싸다. 그 덕분에 여전히 운전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학교에만 있을 때보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지고 여러 문화생활에 관심이 생기면서 지하철이나 택시가 아닌 자차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너무 몰려있는 곳을 싫어해서 지하철보다는 택시를 선호하는데 탈 때마다 가격 부담도 좀 있고 먼 거리는 결국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일정을 확인하고 예매를 하는 행위가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면허 취득에 대한 마음속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던 중에 확실한 필요성이 생겼다. 산업기능요원을 마치고 26년 가을학기에 복학하면서부터는 본가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너무 좁고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따로 떨어져있는 기숙사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자취는 해보니까 귀찮은 일이 너무 많을 뿐더러 매번 배달 음식만 먹어서 건강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던 것이 가장 컸다. 기숙사도 싫고 자취도 싫다 보니 본가에서 다니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까지 차로 30분 정도 거리라 크게 무리가 되진 않아 보여 좀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학원 등록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로 8월 말부터는 내가 운전을 할 수 없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버렸기 때문에 산업기능요원이 끝나고 아직 대학생들이 방학하지 않은 지금 빠르게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학원이 있어 주말에 전화로 바로 등록을 하고 그 다음주 화요일과 수요일 2시간씩을 투자하여 장내 교육과 시험을 진행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나는 필기 시험을 먼저 통과해야 장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 덕분에 학원에서 필기 시험을 보는 날인 목요일에 맞추어 화, 수, 목 3일 동안 장내와 필기를 모두 끝내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장내 시험
화요일 아침, 학원 대기실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강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내는 워낙 쉽다고 들었고 나는 2종 자동이기 때문에 더 쉬울 것이라고 부모님과 친구들이 말해주어 걱정보다는 그냥 차를 운전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게 느껴졌다. 첫 2시간 교육을 받고 난 뒤의 소감은 들은대로 정말 쉽다는 것이었다. T자 주차 코스도 학원에서 가르쳐준 공식대로 하면 실패하기가 더 어려웠고 워낙 느린 속도로 진행하다 보니 핸들링도 아주 편했다. 그나마 시속 20km를 넘겨야하는 구간이 처음에 조금 무서웠는데 적응하고 나니 오히려 가장 재밌었다.
다음 날은 교육이라기 보다는 그냥 2시간 동안 계속해서 실제 시험처럼 채점 기기를 켜고 장내 코스를 돌았고 안정적으로 100점이 계속 나와서 긴장하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근데 막상 시험에 들어가니 약간의 해프닝이 발생했다. T자 주차를 하던 중에 갑자기 채점 기기가 전원이 꺼져버리더니 재부팅 되는 것이었다. 이러면 채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어 근처에 서계시던 모르는 강사님을 불러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사무실에 연락을 해주셨다. 다행히 재부팅 된 뒤에도 진행 중이던 기록이 남아있어 큰 문제 없이 시험을 계속할 수 있었고 장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필기 시험
필기는 오히려 장내 시험보다 더 긴장되었는데 이렇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고 보는 시험은 내 인생 최초였기 때문이다. 2종 자동은 필기 시험 점수가 60점만 넘으면 되는데 어플로 모의고사를 풀었을 때 평균 80점대가 나와서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은 상태로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꽤나 긴장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학원으로 대전운전면허시험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시험을 진행했고, 기억상 28명 정도가 시험을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을 볼 수 있는 노트북이 10대여서 10명씩 끊어서 시험을 봤는데, 기준이 대기실에서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부터였다. 나보다 빨리 온 사람들 중에 오른쪽에 앉아계셨던 분들도 많았는데 이 분들은 조금 짜증났을 것 같다. 나는 운 좋게도 나름 왼쪽에 앉아서 빠르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 결과는 모의고사와 유사하게 80점대가 나와서 여유롭게 통과했다. 이제 나는 필기 시험과 기능 시험을 모두 통과했기 때문에 연습 면허를 발급 받을 수 있었는데, 감독관 분들이 시험장으로 돌아가서 전산처리를 한 뒤에 발급이 가능하다고 해서 집에 간 뒤에 1시간 단위로 계속해서 발급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연습 면허를 발급 받아야 도로 주행 예약이 가능했고, 나는 최대한 빠른 날짜로 도로 주행을 예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후 4시쯤 연습 면허 발급이 가능해서 바로 학원에 전화를 걸어 다음주 화, 목(수요일은 지방선거로 휴무)에 도로 주행을 진행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도로 주행
가장 긴장되었고 동시에 재밌었던 과정이 도로 주행이다. 도로 주행은 총 6시간의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는 구조여서 나는 화요일 2시간, 목요일 4시간 교육을 받고 목요일에 바로 시험을 보도록 일정을 잡았다. 시험 보는 날에 4시간을 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시작 전에는 아무래도 실제 도로를 달리는 거다 보니 사고를 낼 수도 있다는 걱정에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다. 다행히도 내가 등록한 학원은 도로 주행 코스가 매우 쉽기도 하고 교육용 차를 타고 있으니 다른 운전자분들도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첫 2시간을 타고 나서는 큰 걱정이 많이 줄었다. 오히려 장내와는 다르게 도로 주행에서는 시속 80km까지 달릴 수 있으니 훨씬 재미가 커서 다음 교육을 기다리게 되었다.
첫날 교육이 끝나고 지방 선거 일정으로 인해 하루 쉬고 그 다음날 교육을 받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사전투표를 했어서 선거날에 시간이 비었다. 그래서 선거날에는 계속해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우리 학원의 도로 주행 코스를 시청하면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빠가 시간이 된다고 하셔서 아빠차를 타고 학원의 도로 주행 코스를 함께 연습했다. 아빠가 옆에 타고 계시니까 학원에서 할 때보다 좀 더 긴장되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게 연습했고 아빠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할 거라고 얘기해주셨다.
두 번째 교육에서는 장내 교육의 두 번째 날과 같이 계속해서 코스를 반복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4시간 동안 같은 곳을 돌다 보니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험을 통과해야 하니까 최대한 집중해서 운전했다. 시험은 함께 시험을 보는 사람 한 명과 감독관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한 차를 타고 진행하는 형태였다.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 더 추가되니까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워낙 많이 연습했다 보니 그냥 편하게 운전했다. 코스는 시작할 때 기기에서 랜덤으로 지정되는 형태였는데 나는 D코스가 걸렸다. 개인적으로 A나 C코스가 더 쉽다고 느껴져서 그 둘 중 하나가 나오길 바랐는데 D가 나와서 살짝 아쉬웠다. 물론 D코스라고 어려운 건 아니어서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함께 시험을 본 분은 B코스를 뽑아서 진행했다. 통과한 상태로 뒷좌석에서 다른 분이 운전하는 걸 구경하니 재미도 있고 뭔가 응원도 하게 되었다. 그분도 잘 합격하셔서 서로 축하한다고 대화도 했다.
내가 시험에서 걸렸던 D코스는 대략 아래와 같은 형태였다.

출처: 운전선생 신관 자동차운전전문학원 도로 주행 D코스
면허 발급!!!
도로 주행까지 통과한 당일 부모님이 학원으로 데리러 오셔서 바로 청주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면허시험장이 6시까지 열려있다고 하는데 내가 5시쯤 도착해서 혹시 발급이 안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발급이 10분 만에 되는 것을 보고 아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모바일 신분증을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존에는 모바일 신분증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ic칩이 들어간 버전으로 재발급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너무 귀찮아서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운전면허를 발급 받으면서 ic칩이 들어간 버전으로 발급을 신청했고 덕분에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모바일 신분증을 등록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에는 애플 페이가 되지 않는 곳이 많아서 지갑을 아예 놓고 다닐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꽤나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듯해 만족스럽다.
마치며
2주간 학원을 다니면서 면허를 따긴 했지만 아직 운전 실력은 형편없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쿠팡에서 초보 운전/운전 연수 자석 스티커를 사서 아빠 차에 붙이고 같이 연수를 좀 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매일매일 학교까지 가는 코스를 연습하면서 운전 실력 증진에 집중하는 일상을 보내야겠다.